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삼국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분주 할 때 직산면 수헐원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동쪽 산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영롱함을 보고 신령(神靈)이 사는 산이라 하여 거룩할 성(聖)자와 거할 거(居)를 써서 성거산이라는 명칭을 지어 주었고 친히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도 이 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병인박해의 목천 순교자를 보면 1866년 10월(음력) 소학골과 서들골, 주위의 교우촌이 발각 되기 시작하면서 계속 포졸들이 덮쳐 이곳에 거주하던 신자들이 잡혀 모두 23명이나 순교하게 되었다.
소학골 교우촌 9명, 서들골 교우촌 4명, 복구정 교우촌 2명, 베장골 2명, 장자동 4명, 공심리 1명, 목천 1명 모두 23명이나 된다.
이들은 서울 좌포도청(11명), 공주감영(6명), 청주(2명), 죽산(3명), 미상(未詳 1명)에서 순교하였다.
현재 병인년 10월 소학골에서 체포되어 공주 감영에서 순교한 배문호(베드로)와 최천여(베드로), 최종여(나자로), 고요셉과 최씨 며느리 등 5명의 시신만이 성거산 성지 제1줄 무덤에 묻혀 있다.
이 이외도 순교자들의 시신을 현재 이 곳 성지에 이전(移轉)한 여섯분들의 증언과 순교자들 후손들의 구전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에는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이곳에 묻혀 계신다고 한다.
하느님과 진리를 위해 생명을 바쳐 증거한 장한 순교자님들은 그 동안 오랫동안 오고가는 사람 없이 들꽃들과 벌, 나비, 짐승들만이 함께 했던 성거산성지의 교우촌과 무명 순교자 묘소는 침묵의 역사 속에 숨겨져 있었다.
이제는 신앙인의 순례의 선교지가 되고 있다. 달이 바뀔 때마다 주위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야생화는 마치 우리 순교자들과 신앙의 선조들이 하느님과 신앙 때문에 흘린 피를 상징하듯이 오는 순례자들을 반기고 있다.
성거산 기슭에 위치한 천안노블랜드하늘공원은 성스러움이 감도는 곳으로 고인을 기리며, 남아있는 가족들은 함께 산책하며, 행복을 꿈꾸는 곳입니다.
각각 특성에 맞춘 안치단(개인단, 부부단, 가족단 등)
현대적이고 품격있는 잔디위에 봉안담
서울에서 55분 거리에 위치
각각 특성에 맞춘 안치단(개인단, 부부단, 가족단 등)
현대적이고 품격있는 잔디위에 봉안담
야외 넓은전경에 위치한 가족탑
은빛찬란한 아름다운 호수
주변에 아름다운 호수와 잘 어울리는 자연환경
성거(聖居) 산기슭의 천혜의 명당